理由

ⓒ 모래돛

 

기숙사 제도로 전환되고, 유에이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어느 주말의 늦은 오후.

이이다는 1층 공동 주방에서 죽을 끓이고 있었다.

 

 

“어이, 이이다! 거기서 뭐해?”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세로가 질문했다. 식사 시간이 아닌 때에 주방에 있는 이이다의 모습을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죽을 끓이고 있다.”

“아니, 그건 보면 알지.”

 

 

세로가 슬쩍 다가와 냄비 속 내용물을 살폈다. 고소한 향이 올 라오는 야채 죽이 보였다. 이이다 녀석, 레시피 정석대로 만든 건가? 진짜 죽을 잘 끓이는데? 짧게 감탄하던 세로는 이이다가 만든 이 죽을 먹을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점심으로 먹으려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우리 아까 점심 먹었잖아.”

 

 

점심을 먹은지 겨우 몇 시간이 지났고, 아직 저녁 먹을 때는 아녔다. 세로의 반박을 들은 키리시마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말했다.

 

 

“훈련하고 와서 배가 다시 고파졌을 수도 있지.”

“이이다는 식단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스타일이잖아.”

 

 

허기 졌다 해서 굳이 죽을 끓여서 먹는 건 이상하다는 반박이 들어왔다. 이이다라면 기다렸다가 저녁 식사를 든든히 했을 거라는 합리적인 반박이 이어졌다.

공동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하가쿠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탁 튕기며 외쳤다. 이이다가 죽을 끓이는 이유가 뭔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알겠다! 키나가와에게 가져다 주려는 거지?”

 

 

감기 걸려서 오늘은 쉬고 있겠다 했잖아! 경쾌한 목소리로 하가쿠레가 덧붙였다. 정답을 맞췄다면서 아주 의기양양한 태도였 다. 하가쿠레의 말을 들은 A반 학생들은 이이다가 왜 갑자기 주방에서 정성스럽게 죽을 끓이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 사이가 각별하단 건, 이제 A반 학생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이이다가 키나가와를 챙기고, 키나가와도 이이다를 챙기는 건 너무 당연해서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바쿠고, 미도리야가 감기 걸리면 너도 죽 끓여주냐?”

 

 

불쑥, 궁금해졌다면서 키리시마가 바쿠고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앙? 뭔 개소리야?”

“아니, 너랑 미도리야도 소꿉친구 사이잖아.”

 

 

A반에 서로 소꿉친구인 관계가 더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며 키리시마가 말했다. 과연 바쿠고 카츠키는 미도리야 이즈쿠가 감기에 걸렸을 때 죽을 끓여주며 간호해줄 것인가! 아무도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올 거라 예상하지 않았다. 바쿠고가 기꺼이 죽을 끓여서 미도리야를 간호해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면, 오히려 모두가 기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빌런이 변장한 ‘가짜’라며 소동이 일어났을 지도 모를 일.

예상대로 바쿠고는 인상을 팍 쓰면서 화를 냈다.

 

 

“데쿠 자식이 감기 걸렸으면 그대로 뒈지는 거지! 내가 죽을 끓여주긴 왜 끓여줘? 지가 등신 같이 컨디션 관리를 못해서 감기 걸려놓고!!!”

 

 

감기에 걸린 미도리야가 잘못했다는 논리가 이어졌다. 키리시마 는 이제 질문을 던지는 대상을 미도리야로 바꿨다.

 

 

“미도리야는?”

“아하하…. 캇쨩이 감기 걸리는 일이 거의 없어서 괜찮지 않을까?”

 

 

물론, 바쿠고가 감기에 걸린 일이 아예 없던 건 아녔다.

몇 번 부모님의 부탁 아닌 부탁으로 병문안을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도리야가 죽을 직접 끓여서 간 적은 없었다.

그러니, 이이다 텐야처럼 정성스럽게 죽을 끓여서 키나가와 유쿠리의 방에 병문안으로 찾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키나가와씨는 성질 부리고 있는 캇쨩과 다르게 상냥하니까.’

 

 

미도리야는 은은하게 미소짓는 얼굴로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시끌벅적하다 못해 소란스러운 동급생들을 지나치며, 이이다는 죽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짓궂게 놀리는 동급생들에게 학급 위원장으로서 질책하는 발언을 외치는 일이 생겨 몇 분간의 시간이 지연됐다.

죽이 식진 않았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쟁반 위의 죽은 따뜻하 다 못해 뜨거웠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죽을 들고, 이이다는 키나가와의 방 앞에 섰다.

 

 

“유쿠리.”

 

 

똑똑. 노크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문이 바로 열리지 않자, 이이다는 키나가와를 부르는 목소리를 좀 더 높였다. 잠들어 있어 이이다가 부르는 걸 듣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유쿠리. 잠깐 문을 열어줬으면 해.”

 

 

자고 있다면, 깨워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안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이다는 차분히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텐야…?”

 

 

문은 천천히 열렸다. 이이다의 짐작대로, 자다 막 깬 모양인지 키나가와의 얼굴엔 졸음이 한 가득 묻어있었다. 평소보다 눈꼬리가 아래로 더 내려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죽을 좀 가져왔어.”

 

 

약을 먹기 전에 밥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이이다가 쟁반 위 죽그릇을 내밀었다. 키나가와는 눈을 깜빡깜빡 감았다가 뜨며 이이다의 얼굴과 그가 가져온 죽 그릇을 번갈아 쳐다봤다. 문고리를 잡고 있는 손 끝이 살짝 떨렸다. 키나가와는 천천히 문을 밀어서 열었다. 이이다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문이 열리며 드러나는 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고마워, 텐야.”

 

 

죽을 가지고 문 앞에 서 있는 이이다. 고등학생 모습이 점차 어려진다. 키가 줄어들고, 얼굴이 동글동글해지고, 눈매도 귀엽게 변한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유에이에 입학하기 전, 옆집에서 오고 가며 마주쳤던 어린 날의 이이다를 본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기 위해선, 까치발을 해야 했던 어린 날.

유쿠리와 텐야는 서로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놀았다. 유치원을 갈 때도 함께 가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함께 돌아오곤 했다. 하루 24시간 중 자는 시간만을 제외하곤 대부분 함께 지냈으니. 두 사람은 서로가 함께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유치원 가야 하는데에….”

“안 돼. 열이 너무 나서 오늘 유쿠리는 얌전히 집에서 쉬고 있어야 해.”

 

 

모친이 유쿠리를 침대에 눕히며 말했다. 단호한 목소리에선 유쿠리의 반박을 받아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흘러나왔다. 유치원에 가고 싶다 말하는 유쿠리에게 모친은 체온계를 보여줬다.

 

 

“보이니? 열이 38도라서 약 먹어야 해.”

“그치마안….”

 

 

유쿠리는 아직 체온계의 숫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모친이 말하는대로 숫자가 높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몸이 뜨거운 건 본인이 가장 잘 느끼고 있었다. 더워. 더운데….

 

 

“유쿠리도 힘들잖아. 응? 아까 병원도 갔다 왔잖니.”

 

 

모친의 목소리는 이제 걱정스러움이 묻어나왔다. 딸의 열이 38도나 오른 상황이니.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적당히 물을 적신 수건을 유쿠리의 이마 위에 얹으며 모친은 유쿠리를 다독였다. 열이 내려야 유치원을 갈 수 있어. 모친의 다독거림을 듣고 있던 유쿠리는 입술을 살짝 삐죽였다. 불만은 젖살 가득한 양 볼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유치원 간다고 했는데에….”

 

 

병원에 갈 때만 하더라도, 진료가 끝나면 유치원에 갈 수 있다고 했던 터라 유쿠리는 그 말만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병원은 무섭고, 두렵지만. 유치원에 가야 하니까. 두려움을 참고,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쓰디 쓴 약도 먹고, 주사도 맞고 했던 건데….

 

 

“오늘은 푹 쉬고, 내일 가는 거야. 엄마가 약속할게.”

 

 

새끼 손가락을 내미는 모친을 빤히 바라본다. 병원 입구에서도 내밀었던 새끼 손가락. 거짓말이다. 어쩌면 내일도 유치원에 못 갈지 몰라. 유쿠리는 입 밖으로 나오려는 불평을 우물우물 씹었다. 불평을 토로해봐야 자신이 이불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단 걸 알았다.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유쿠리는 자신의 손을 내밀어서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꼭, 꼭이야. 모친에게 약속을 지켜달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보는 게 최선이었다.

이불은 목 끝까지 올라왔다. 덥다고 이불을 내리면 안된다는 신신당부가 이어졌다. 유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우면서도 으슬으슬한 찬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두툼한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린다.

유쿠리가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걸 확인한 모친은 방 밖으로 나갔다. 잠을 좀 자면 괜찮아 질 거라는 말을 남기고 나간 방은 고요하고, 외로웠다.

 

 

‘텐야랑 오늘 탐험하기로 했는데에.’

 

 

아직 동네 지리를 잘 모르는 유쿠리를 위해 텐야가 마을 곳곳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텐야에게 마을을 소개 받으면서 가본 적 없는 곳을 찾아가 보는 ‘탐험’을 기대하며 매일 눈을 뜨곤 했다.

 

 

‘오늘은 유치원 반대편 사거리 쪽을 가기로 했었는데….’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 채, 유쿠리는 방문을 쳐다봤다. 하염없이 문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가물가물 눈꺼풀이 감기던 유쿠리의 눈이 커졌다. 잘못 들었나? 방금 누가 노크를 한 것 같은데. 유쿠리는 방문을 쳐다보며 소리가 다시 들리길 기다렸다.

 

 

“엄마?”

 

 

똑똑.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듯. 다시 노크 소리가 돌아왔다.

 

 

그리고.

 

 

“유쿠리. 들어가도 괜찮아?”

 

 

텐야의 목소리.

 

 

“그 때도 텐야가 죽을 가져왔는데.”

 

 

어렸을 때 생각난다며 유쿠리가 웃었다. 말갛게 웃는 얼굴은 순수한 기쁨이 가득 흘러나오고 있다. 유치원에 가야 했던 이유, 만나고 싶었던 사람, 얼굴을 꼭 보고 싶었던 상대가 자신을 걱정하며 찾아와 줬단 사실에서 느끼는 벅찬 감동이 고스란히 표정으로 나타난다.

 

 

“크, 크흠. 그 때 가져간 건 어머니의 솜씨였지만 이번에는 직접 만들어 봤다.”

 

 

텐야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말했다. 유쿠리의 시선이 닿는 곳이 홧홧했다. 감기에 걸린 건 유쿠리인데, 괜히 자신까지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들어 이상했다.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 다, 이이다 텐야! 스스로에게 부끄러워 할 것 없다 말해봐도 소용 없었다. 텐야의 귀 끝은 이미 새빨갛게 변해 불타고 있었다.

 

 

“정~말? 텐야가 날 위해서 만들어 준 죽이란 말이지? 잘 먹을게!”

 

 

유쿠리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걸 느낀 텐야는 고개를 다시 돌렸다. 수저를 들고 있는 유쿠리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고마워, 텐야.”

 

 

눈이 마주치자, 유쿠리가 배시시 웃었다. 진심이었다. 고맙다는 말 보다 다른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유쿠리가 지금 꺼낼 수 있는 말은 고맙다는 감사 인사뿐이었다. 텐야는 단순히 오래된 소꿉친구를 걱정해서 죽을 가져온 걸 테니까. 그 이상의 말은 꺼낼 수 없다. 담백하고 고소한 죽을 삼킨다.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는 죽과 달리 말을 삼키는 건 쉽지 않다.

 

 

“흠,흠. 죽을 다 먹고 나선 꼭 약을 먹도록 해. 30분 식후 약이니까, 시간을 지켜서 먹도록 타이머를 세팅 해두고 가겠다.”

“에. 타이머?”

 

 

죽을 먹던 유쿠리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릇 안의 죽을 수저로 괜히 저으면서 말했다.

 

 

“텐야가 약 먹으라고 해주면 안 돼?”

“…유쿠리.”

“나, 오늘 훈련 못했잖아. 다들 어떻게 훈련했는지 이야기 듣고 싶어. 이야기 해주면 안 돼?”

 

 

텐야는 잠시 침묵했다. 안경을 괜히 손으로 밀어서 고쳐 쓰는 걸 반복했다.

 

 

“미안. 많이 바쁘지….”

 

 

죽을 직접 만들어 온 것만으로도 번거롭게 한 것 아니냐며 유쿠리는 어깨를 살짝 늘어트렸다. 시무룩해지는 모습을 본 텐야는 다급히 말했다. 아니! 바쁘지 않아!

 

 

“난 네가 피곤할 테니까! 혼자서 쉬다가 푹 잤으면 해서 그런 거였어!”

“그럼…?”

“약 먹을 시간이 되면…. 큼, 알려줄게.”

 

 

침대 끝에 살짝 걸터앉는 텐야를 보며 유쿠리는 죽을 수저로 휘젓던 걸 멈췄다. 최대한 적은 양을 뜬 수저가 입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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